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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목을 매단 개목걸이는 숨통을 조여 왔다.
죠노우치는 갑갑함에 숨을 몰아쉬었다. 손으로 목줄을 죽 잡아당겨 틈을 내자, 그제야 조금 숨이 트였다.
“윽!”
순간 몸이 앞으로 나뒹굴어졌다. 목줄이 잡아당겨진 것이다. 죠노우치는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겨우 몸을 바로 하고 앞을 올려다보자, 목줄의 끝을 잡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진한 미소를 머금고 그를 내리깔아 보고 있는 남자.
“왜 그러지? 죠노우치.”
“콜록! 윽……….”
“이런, 숨이 막히기라도 한가 보군.”
남자가 무릎을 꿇어 그의 목을 매만진다. 목줄에 조이고 쓸린 목은 어느덧 붉게 상처가 나 부어 있었다. 발갛게 일어난 상처 위로 남자의 손가락이 닿았다. 곧게 뻗은 손가락은 차가웠다. 죠노우치는 그 온도에 순간 몸을 떨었다. 상처를 매만지는 손가락은 본데없이 부드러웠다. 그가 자신의 동생에게만 보여주는 다정함이었다. 죠노우치는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리깔린 푸른 눈동자는 그가 처음 보는 빛을 머금고 있었다. 부드러운 눈빛. 걱정하는 듯 내뱉는 목소리는 꿀처럼 달았다. 죠노우치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 남자가 그, 카이바 세토가 맞나?
“하지만 아직 버릇을 못 들였으니, 참아야 해.”
“카이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둔탁한 통증이 가해졌다. 목이 졸린다. 죠노우치는 숨을 헐떡대며 카이바를 올려다보았다. 눈가에 서려 있던 부드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칼날 같은 찬 눈동자만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죠노우치는 그 온도차에 몸을 떨었다. 카이바가 손에 쥔 목줄을 감아쥐며 그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죠노우치는 속수무책으로 그의 눈앞까지 끌려갔다. 마주친 눈 사이로 카이바가 비소했다.
“개가, 말을 하나?”
“큭……!”
카이바의 손이 죠노우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다시, 다정한 미소다. 끝과 끝을 달리는 간극 속에서 죠노우치는 아득함을 느꼈다.
“착한 개가 되어야지. 죠노우치.”
죠노우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켜낸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보일 카이바의 차가운 눈이 두렵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 죠노우치를 그가 부드럽게 잡아끈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앞서가는 카이바의 뒤를 죠노우치가 쫓는다. 그의 발걸음에는 배려가 없어, 죠노우치는 몇 번이나 목이 졸렸다.
*
죠노우치는 카이바를 동경했다.
동경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카이바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재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듀얼 실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심지어 듀얼 몬스터즈를 전 세계적인 인기로 끌고 올 발판을 만든 솔리드 시스템을 개발해낸 사람이 아니던가. 세간에서는 현재 듀얼 몬스터즈의 창시자는 페가서스이지만 진정한 아버지는 카이바 세토다, 하는 식의 말까지 하고 있을 정도였다. 듀얼리스트라면 모두가 카이바를 동경할 것이다. 좋아함, 과는 별개의 일일 테지만. 죠노우치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으르렁대고 시비를 걸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카이바 세토는 동경할 만한 인간이었다. 죠노우치는 어느 순간부터 카이바와 함께 듀얼을 하는 것을, 그리고 대등히 싸우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기든 지든 그것은 죠노우치에게 굉장한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었다. 언젠가 카이바가 자신을 ‘말뼈다귀’나 ‘범골’ 따위가 아닌 제대로 된 호칭으로 부르게 해 주겠다고 죠노우치는 다짐했다. 일류 듀얼리스트가 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러니 카이바 세토와의 듀얼은 그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이 되었어야 했다.
졸업을 한 후 듀얼리스트로서의 길을 걷고 있던 죠노우치에게 어느 날, 카이바는 듀얼을 걸어왔다. 뜻밖의 신청이었다. 고급스러운 초대장과 미국행 비행기 티켓이 동봉되어 그의 집으로 날아왔고, 죠노우치는 부랴부랴 짐을 싸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카이바가 그를 위해 준비한 것은 그의 개인 비행기였다. 이상할 정도로 친절한 초대였다. 죠노우치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며, 카이바가 개과천선을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는 카이바 세토는 자신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만한 남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듀얼까지도.
그들은 고등학생 때 있을 수 없는 모험을 했다. 소중한 동료를 얻고 귀중한 것들을 잔뜩 얻었던 모험들 속에서 죠노우치는 듀얼리스트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 개척해 나갔다. 그것은 죠노우치의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는 사건들이었으며 지금의 그를 만든 발판이기도 했다. 괴로움과 슬픔도 분명히 있던 기억들은 죠노우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었다. 그 기억은 모두에게 소중하게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단 한 사람만 빼고.
빛나는 기억 속의 모퉁이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던 남자를, 죠노우치는 어쩐지 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열등감과 동경을 한 번에 느끼게 한 남자. 또 다른 유우기, 아템이 떠나버린 후 미국으로 떠나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카이바 세토를. 죠노우치는 턱을 괴고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은 언제나 시리게 빛나던 카이바의 푸른 눈을 떠올리게 했다. 카이바는 유명인사였고, 또한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었기에 공식행사 따위에 얼굴을 자주 비추곤 했다. 완전히 성인이 된 카이바는 고등학생 시절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푸른 눈은 여전히 빈틈이 없어서 죠노우치는 그런 카이바를 보며 조금 기묘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사람과 함께했던 날도―그걸 함께라고 말하기에는 좀 이상할 지도 모르지만―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그의 모습은 죠노우치에게는 아득한 향수를 떠올렸고, 아직까지도 품고 있는 동경과 승부욕을 불태웠으므로 죠노우치는 그런 카이바의 모습을 가슴 속에 담고 지금껏 듀얼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그러니 카이바의 이번 초대는 죠노우치에게는 뜻깊은 것이었다. 수년이 지나 죠노우치도 성장했다. 카이바도 물론 성장했으리라. 그런 그와 얼굴을 맞대고 대등하게 듀얼을 하는 모습을, 죠노우치는 얼마나 꿈꿔왔던가. 죠노우치는 그렇게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에 도착했다.
카이바가 손수 준비해 주었다던 긴 리무진을 타고 도착한 미국 KC는 웅장했다. 카이바 코퍼레이션, 그리고 카이바 세토의 심볼인 푸른 눈의 백룡이 웅장하게 회사의 앞에 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죠노우치는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 꼭대기 층의 가장 안쪽 방. 죠노우치는 방에 들어서기 직전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몇 년 만일까. 그는 여전할까. 곧 경호원이 문을 열었다. 넓은 창가와 비쳐들어오고 있는 햇빛, 그 사이로 뒤돈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카이바의 모습이 보였다. 경호원은 죠노우치를 안으로 들여보낸 후 문을 닫았다. 크고 넓은 방에는 뒤돈 카이바와 죠노우치밖에 없었다. 죠노우치는 문의 바로 앞에서 구두코로 바닥을 몇 번 쿡쿡 눌렀다. 카이바는 자신이 온 것을 알았음에도 뒤돌아보지 않았고, 어쩐지 그도 예전처럼 무턱대고 시비를 걸 수가 없었다. 죠노우치는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카이바가 뒤돌았다.
조금 더 키가 컸나? 몸이 조금 더 단단해졌나? 말쑥한 정장을 입고 있는 카이바의 모습은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니, 이미 어른이었지. 죠노우치는 순간 시간을 건너뛰어 고등학생 시절, 아직 죠노우치가 햇병아리 듀얼리스트고 카이바가 이제는 사라진 그의 영원한 라이벌과 함께 달리던 그 순간으로 돌아와 있는 줄로 알았다. 그 위로 시간이 겹쳐졌다. 죠노우치는 멍하니 카이바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이죽여 비소를 만들어내었다.
‘범골. 네놈은 사람을 보고 인사를 할 줄도 모르나?’
‘큭.’
죠노우치는 그가 느꼈던 아련함이 순식간에 깨져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과천선은 개뿔. 죠노우치는 거칠게 욕을 토해냈다. 카이바는, 그냥 카이바였다. 달라지기는 무슨.
‘천박한 건 여전하군.’
‘네 그 사람 깔보는 시선도 여전하고!’
‘깔볼 만한 사람을 깔보는 게, 문제가 있나?’
여전히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남자였다. 죠노우치는 버럭 화를 내려다 겨우 참았다. 이제 그는 어른이었다. 언제까지고 옛날처럼 바락댈 수만은 없었다.
‘듀얼은 언제 할 건데?’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지금 당장?’
죠노우치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덱을 무심코 만졌다. 카이바의 시선이 그의 주머니에 와 닿았다. 그가 천천히 죠노우치에게로 다가왔다.
‘새로 짠 덱인가?’
‘아아.’
죠노우치는 주머니에서 손을 떼고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옛날보다 훨씬 파워 업한 덱이지. 날 옛날의 죠노우치 카츠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옛날의 그 범골이면 곤란하지. 그 때로부터 발전이 조금이라도 있으리라 믿고 네놈을 부른 거니까.’
‘이 자식.’
한 마디도 지는 법이 없었다. 죠노우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듀얼은 어디서 할 건데? 내 듀얼 디스크는 짐가방에 있어.’
‘필요 없다. 전용 듀얼 링이 있으니.’
카이바가 앞서 걸었다. 그는 카드를 꺼내 옆방의 문을 열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듯한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그는 가장 지하의 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매끄럽게 내려가 지하에 도착했다. 넓게 뚫린 지하실에는 예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되어있는 듯한 듀얼 링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죠노우치는 듀얼 링의 한쪽에 올랐고, 카이바도 여유롭게 그 반대쪽에 올랐다. 죠노우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덱을 내려놓았다. 듀얼을 시작하기 전, 카이바가 말했다.
‘한 가지, 이 듀얼의 끝에 조건을 달지.’
‘조건?’
죠노우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안티 룰 같은 걸까? 그러나 죠노우치가 가진 카드들은 대부분 카이바의 손에 있을 것이었다. 그가 죠노우치의 붉은 눈의 흑룡이나 시간의 마술사 따위를 빼앗아 자신의 덱에 추가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카이바가 말했다.
‘한 가지. 이긴 사람은 상대방으로부터 한 가지, 무슨 명령이든 강제할 수 있다.’
‘며, 명령?’
‘그래. 자신이 없나?’
죠노우치는 당황했다. 안티 룰도 뭣도 아닌 강제 명령이라니. 카이바의 꿍꿍이속이 도통 보이지 않아 그가 주저하자, 카이바가 비죽 입술을 말아올려 웃었다.
‘겁이 나나 보군, 범골. 조금 발전한 줄 알았는데 용기는 예전보다도 못한걸.’
‘큭. 웃기지 마! 겁은 무슨 겁! 좋아, 받아들이지! 내가 이기면 각오하라고!’
‘네놈이 내게 이길 수 있을 때의 일이지만 말이야.’
카이바는 자신의 덱을 꺼내어 필드에 올렸고, 듀얼은 시작되었다.
*
목줄은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는 개처럼 바닥에 앉아 창가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카이바는 서류를 처리하다 말고 잠깐씩 부드럽게 그의 머리를 쓸었다. 정말 개가 된 것 같아 수치스러웠지만 그의 눈빛이 이상할 정도로 다정해 죠노우치는 혼란스러웠다. 정말 사랑하는 애완견을 보고 있는 듯한 눈이었다. 대체 카이바는 무슨 생각인 걸까. 지난 이틀 동안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했던 질문을 되새기며 죠노우치는 입술을 짓씹었다.
듀얼의 승자는 카이바였다.
초반에는 승기를 잡았던 죠노우치였지만, 카이바는 더욱 강력해진 푸른 눈의 백룡으로 그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진 후 낙심하는 죠노우치에게 그가 요구한 것은 죠노우치가 자신의 개가 되는 것이었다. 이미 예전 오토기와의 승부에서 졌을 때 그런 비슷한 요구를 받아본 적 있던 죠노우치는 당황했다. 그는 언제부터 준비한 것인지 모를 목줄을 그에게 채웠고, 그 때부터 그를 철저히 개로 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오토기처럼 반장난이 아니었다. 오토기의 경우에는 죠노우치에게 모욕을 주고 유우기를 도발하려는 목적이라도 있었다. 카이바에게는 전혀 목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죠노우치 카츠야를 자신의 ‘애완견’으로 대했고, 그것으로 만족한 듯 보였다. 그가 보지 못했던 따듯함을 보여주며 카이바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웃음은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죠노우치가 ‘개’가 아닌 ‘사람’이 되고자 할 때면 카이바는 무섭게 돌변하곤 했다. 벌을 내리듯 폭력을 가했고 죠노우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개가 되어야만 했다. 그럴 때면 카이바는 다시 상냥하게 웃었기 때문에, 죠노우치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체 카이바의 속셈은 무엇인 걸까. 죠노우치는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 ‘개’ 생활은 또 언제까지 지속되는 걸까. 죠노우치는 몇 번이나 카이바에게 그 기한을 묻고 싶었지만, 카이바는 용납하지 않았다. 죠노우치는 답답한 목을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흉이 지겠군.”
카이바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죠노우치는 흠칫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무릎을 굽혀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그의 시선이 흔들리는 죠노우치의 눈동자를,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입을 지나 그의 목에 와 닿았다. 그는 발갛게 변한 목을 보고 웃었다.
“그래. 흉이 지면 목줄을 벗게 해 주지.”
“―――”
“흉이 지면 목줄을 하고 있지 않아도 네 주인이 누군지 알게 될 거야, 죠노우치.”
그의 머리를 매만져오는 손은 너무나도 상냥했다. 그러나 죠노우치는 그 상냥함 속의 푸른 눈이, 기묘한 열기와 잔인함을 품고 있는 눈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비명을 혹은, 신음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죠노우치는 지금 이 순간 뛰쳐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뛰쳐나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카이바 세토에게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러나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죠노우치는 조용히 그의 손길을 받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인이 화를 낼 것이 분명했으니까.
*
야미진/아템진으로 쓰는 In The Long Gun과 더불어 내년 2월 유희왕 통합 배포전 다이렉트 어택!! 에 회지로 낼까 고민중인 소설입니다..!
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글을 쓰네요...^^....ㅎ..
': 유희왕 > * 카이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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